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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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단 소개
KBL의 프로농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홈 구장은 부평구 삼산동에 위치한 인천삼산월드체육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역사는 1996년에 창단된 대우증권 실업 농구단에서부터 시작한다. 연세대학교와 명지대학교를 연고 학교로 하여 창단되어, 우지원, 석주일, 김훈, 조성훈, 정재헌 등이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창단 감독은 전 연세대학교 농구부 총감독이었던 최종규 감독이 맡았고, 유재학이 코치를 맡았다. 1998년 구단 운영법인 (주)대우제우스 설립 후 독립적으로 운영되다가 1999년에 대우자동차로 법인이 합병됐으나, 얼마 못 가 대우그룹이 망하면서 신세기통신에 넘어갔다. 그후 SK그룹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하고 1개 기업이 2개 이상의 구단을 운영할 수 없다[7] 는 KBL 규정에 따라 2003년 전자랜드에 매각되어 농구단을 운영중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악화로 2021년 5월까지만 농구단 운영을 한다. 그동안 부족한 모기업 재정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 끈기와 투지있는 농구를 바탕으로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창단 모태가 당시 최고의 인기팀이던 연세대학교 졸업생이었기 때문에 프로농구 초기부터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연고지도 빅마켓으로 꼽히는 인천이었고, 프로농구 경기가 열릴 만한 곳이 없어 근방의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임시로 홈 경기를 치렀던 사실상 인천-부천 공동 연고지 구단이었다. 실제로 부천시 측에서 완전 이전을 제안했지만 인천이라는 큰 시장을 포기하기엔 너무 위험부담이 커 인천 연고지를 유지한 체로 2006년 11월 26일까지 부천실내체육관을 사용했다. 이후 2006년 12월 3일부터 2006년 9월 완공된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중이지만 길주로를 사이로 두고 인천과 부천이 경계라 접근이 쉽기 때문에 부천 팬덤도 끌어들인다.
2. 시즌별 역사
3. 선수단
4. 응원단
5. 역대 유니폼
6. 역대 감독
특이하게도, 외국인이었던 제이 험프리스를 제외하고 모두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전신인 대우증권이 연세대와 명지대를 기반으로 창단된 신생구단이기도 하였고, 팀을 인수한 전자랜드의 회장도 연세대학교 농구부 후원회장을 지냈을정도로 연세대학교 농구부에 대한 자긍심의 결과로 보인다.
7. 역대 성적
- 연고지는 바뀌지 않았으나 팀명이 자주 바뀐 구단이다.[11][12]
- 2017-18 시즌까지 챔피언결정전 진출이 없는 유일한 팀이었으나[13] 2018-19 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갔지만 준우승에 그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못한 3팀 중 한 팀이다.[14]
- 아직까지 정규리그 우승이 없는 유일한 팀이며,[15] 또한 8위를 해보지 않은 구단이다.[16]
8. 사건 사고
9. 기타
- 현재 KBL에서 가장 호감인 팀으로 대표되고 있다. 한때 2009년 KCC와의 6강에서의 혈투 및 사건사고로 이미지가좋지 않았고, 잔혹했던 09-10 시즌과 그 이전의 참담한 성적으로 개그랜드라는 놀림을 받았기도 했고, 10-11 시즌이 되면서 정규리그 준우승을 기록, 서태힐 시절에 약팀의 이미지를 씻어내긴 했으나, 2011-12 시즌 막판에 6강 상대를 KCC가 아닌 kt와 붙기 위해 일부러 져서 순위를 조정한다는 의혹을 샀다.[17] 그러다가 2012년부터 전자랜드의 경영난으로 매각, 심지어는 해체 이야기까지 나오자 동정여론이 형성되었고 프로구단 대부분이 싫어했던 프로-아마 최강전을 열심히 참가하여, 작은 대회지만 팀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무대에 진출했다.[18] 그리고 정규시즌에선 SK와 모비스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하였고 플레이오프도 4강까지 갔다. 다만,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벤거박"이 평생 두고두고 회자될 아쉬움으로 남았다.
- 2013-14 시즌 전 선수 구성원은 최하위권임에도 불구하고 조직력 강한 공격과 수비. 유도훈 감독의 지도력과 용병도 국내선수와 하나 되어 화이팅 하는 모습(대표적으로 수비 전 바닥 찍기)으로 크블 팬들에게 매력발산을 하는 팀으로 자리잡으면서 이전의 불명예스러웠던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19] 그러나 15-16 시즌부터는 다시 까이고 있는데 성적도 좋지 않으면서 구단의 감성팔이 언플이 지속되자 타팀 팬들이 이에 반발하게 되어 비판받는 횟수가 늘어났고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개그 비아냥도 다시 증가하였다.
- 2015년 1월 6일 홈경기 때 원정 팀인 동부 프로미의 김주성 선수가 통산 리바운드 2위로 올라서자 경기를 잠시 중단하고 축하해주는 훈훈한 장면을 보여줬다.[20] KBL에 좋은 선례가 될듯.
- 걸그룹 러블리즈의 멤버 정예인 양이 2008-09 시즌 당시 어린이 치어리더 1기 멤버였다고 한다.[21] 이 사실이 구단 공홈 자유게시판에 게시글로 올라왔는데, 구단의 치어팀 실장이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 관련 게시글
- 구단이 돈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도 KBL 참여 구단들 중에서 모기업이 가장 작은 편에 속하는데 다른 구단의 모기업이 전부 대기업인 반면 이 구단의 모기업인 전자랜드만 유일하게 중견기업이다. 창단 당시에는 굴지의 대기업이었던 대우그룹 계열사 대우증권이 모기업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 위기를 겪고 대우증권도 사실상 대우그룹의 곁을 떠나게 되면서 부터 가난한 안습의 역사가 시작됐다. 물론 대우에서 신세기통신으로 넘어가고 그 이후에도 SK그룹이 잠시 맡는 등[22] 대기업 구단이었지만 현재 모습은 살짝 초라하다. 대신 창단 이후 인천/부천 연고지를 버리지 않고 유지해온 만큼 팬들의 결속도가 높고, 원정응원에서도 프로농구 팬들로서는 드물게 최동훈 응원단장의 지휘 아래 어마어마한 단결력을 보여주는 구단이기도 하다. 보통 이런 팀들은 탱킹하면서 하위권인 경우가 많은데 중위권을 지키고 있는 점도 기묘한 점.
- 한편 이 돈이 없다는 느낌 때문에 농빠들 사이에선 외국인 선수 자유계약제를 반대하는 팀 중 하나로 찍혀 농구팬들에게는 에어컨리그 때마다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2017-18 시즌에도 외인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들이 속속 교체되는 촌극을 보여주면서 2018-19 시즌부터는 다시 자유계약제로 환원할 예정이다. 다만 전자랜드가 자유계약 반대 팀이라는 오피셜은 나온 적이 없다. 오히려 유도훈 감독은 실명까지 거론되며 자유계약 찬성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감독의 의견=구단의 의견인 것은 아니니까... 사실상 기정사실화 모드다.
- 2012-13 시즌부터 2014-15 시즌까지는 팀이 침체기에 빠지면 팀이 단체로 삭발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다만 이후에는 세대교체로 팀이 극단적으로 젊어진 영향인지 이제는 삭발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 때의 임팩트가 워낙에 대단했었는지 삭발 안 한지 이제 3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자랜드가 연패에 빠졌다 하면 네티즌들은 '이제 슬슬 삭발 해야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 2017-18 시즌에 홈경기 승리 시 경기 종료 후 팬들과 단체로 왈츠를 추는(...) 이벤트가 생겼다. 팬과 함께하는 이벤트는 좋으나 보기 민망하다는 의견도 있고 승리 후 능욕 타임이라고 재밌어하는 의견도 있다.
- 대우 제우스 시절 유니폼은 NBA 팀 올랜도 매직 초기 유니폼과 흡사했다.
- 2016-17 시즌부터 전자랜드의 게토레이걸을 하고 있는 김유정 양은 10개 구단 게토레이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2018년부터는 K리그 1에서도 매치볼 전달하러 전국순회를 하고 있으며,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를 졸업했다.[23]
- 외국인 감독이었던 험프리스를 제외하고 초대 최종규 감독부터 현 유도훈 감독까지 전자랜드의 감독들은 모두 연세대학교 출신이라는 점이 꽤 특이하다. 이는 팀의 전신격인 대우 제우스가 연세대학교 92학번을 기반으로 창단된 팀이기도 하고, 현 전자랜드의 구단주 홍봉철 역시 연세대 출신에 한때 연세대 농구단 후원회장을 맡을 정도로 지독한 연세대 농구빠였기 때문이었던 걸로 추측된다. 팀을 망쳐놓은 박수교 감독도 사실상 단장으로 영전하였고, 그럭저럭 팀의 호흡기를 다시 붙인 최희암 감독은 전자랜드 계열사의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실제로 최희암 감독은 연세대 농구감독이 되기 전에 꽤 유능한 셀러리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9.1. 각종 기록들
전신인 대우 시절에는 유재학 감독 시절, 6강 플레이오프 진출만 하여 6강 전문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가 2003-04 시즌에 4위를 차지하고, 플레이오프 4강을 차지하며 그 숙원을 풀었으나, 유재학 감독이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하고 그 자리에 박수교 감독이 오면서 막장농구의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24]
-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에 KBL 역사상 최초로 2년 연속으로 꼴찌를 하였다.
- 2004-05 시즌에는 홈에서 5할을 넘는 승률(14승 13패)을 기록하고도 최종순위 꼴찌한 유일무이한 팀이다.(...)[25] 덤으로 이 사례는 꼴찌 팀 중 유일한 홈 10승 이상이다.
- 2005-06 시즌에는 8승 46패, 승률 0.148이라는 KBL 한 시즌 최다패 신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 역대 한 쿼터 최소 득점인 2점을 기록한 적이 있다. 심지어 전신인 대우를 포함해서 무려 4번이나 했다. 한 쿼터 2득점 사례는 총 4번이기 때문에 이 기록을 모두 전자랜드가 갖고 있다.
- 1997-98시즌 대우시절에는 중위권임에도 전체 1위 현대(현재 KCC)를 상대로 4쿼터에 2:26이라는 OME스런 기록을 남기고 13점차로 패배하였다.
- 2005-06 시즌에는 SBS 상대 2쿼터 2:29라는 OME한 스코어로 77:99로 완패했다.
- 2009-10 시즌, 개막 1승 1패 이후 한동안 연패를 당하던 도중,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경기에서 전반에만 50점에 3점 10개 성공 등, 17점 차로 한참 잘 이기고 있어 마침내 연패탈출이 어느정도 확실시되었으나 4쿼터에 들어 8분 넘게 무득점상태에서 겨우 자유투 2개를 넣으며 2득점으로 4쿼터 2:21, 합계 69:76으로 대역전패한 사건이 있다. 디씨 농갤에서 정리한 당시 상황 이 경기가 이미 입원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던 박종천 감독 사퇴의 결정타가 된다.
- 2021년 새해 첫 경기에도 KCC 상대 1쿼터 2득점을[26] 시전, 끝내 2:22를 극복하지 못하고 64:82로 패배했다. 2013년 1월 11일 경기의 리버스 버전.[27]
- 개그플레이의 백미로, 4쿼터 극후반 3점차에 몇 초 안 남은 시점에서 덩크슛을 작렬시키며 패배로 게임이 그대로 한 점차로 경기가 종료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건 잘못된 사실이고, 이후 파울 작전을 통해 추격을 노렸지만 결국 3점차로 패배한다.
- 1998-99 동양 오리온스의 32연패에 묻혀 잘 언급되지 않지만, 역대 KBL 최다 연패 3, 4위 기록을 모두 2009-10 시즌의 전자랜드가 가지고 있다.(...)(각각 13, 12연패) 원래는 2, 3위였으나 2011-12 시즌 막장농구계의 신흥강호 1(...) 서울 삼성 썬더스와 2013-14 시즌 막장농구계의 신흥강호 2(...) 원주 동부 프로미가 14연패를 기록하면서 공동 3위에 나란히 자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2,13연패를 한 시즌에 하고도 꼴찌를 하지 않았다!! 상대전적으로 삼성, SK와는 박빙이었고 오리온스와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여 동률이 되었지만 상대전적에서 4승 2패 우세로 꼴찌를 면했다. 타팀 역시 역대급 막장행보를 달려서 이렇게 된건데 SK는 2라운드이후 8연패-1승-13연패를 포함 22경기에서 1승 21패를 한 결과 16승 38패로 7위[28] 였고 8위는 연승을 딱 한번(30경기 넘어서 성공. 심지어 2연승상대가 전자랜드였다!!)하고도 최고연패가 고작 5연패였던 KT&G에 단 1경기 차이로 밀린 것. 막판 12연패를 당하기 전 5라운드까진 삼성이 8연패로 삽질하는 틈을 타 6위를 다툴 정도였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12경기를 남기고 꼴찌 경쟁에서 이미 4팀 중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시즌은 역대급으로 4팀간 꼴찌다툼이 7위~꼴찌의 경기차가 고작 1경기일 정도로 치열했다.
- 이런 불명예스러운 기록 및 행보 내지는 한편의 예능을 보는 듯한 플레이로 인해 개그랜드, 전자렌지라는 별명이 존재한다. 특히, 이 팀을 개그랜드로 만든 주범인 박수교 前 감독 겸 단장은 한국 농구사에 한 축으로 평가받는 선수였음에도 이 전자랜드에서의 행보 때문에 KBL 역사상 최악의 단장 하면 무조건 나오는 이름이 되었다. 참고로 전자랜드 팬들은 전자랜드를 거쳤던 역대 감독 중 유재학, 유도훈을 유이하게 정상적인 감독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박수교를 KBL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자 2005-06 시즌 초반 처참한 성적을 내고 경질된 제이 험프리스, 2009-10 시즌 초반에 팀을 나락으로 꽂아넣고 물러난 박종천과 함께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것!!! [29] 오죽하면 별명이 박수괴.
- 2007-08 시즌에서는 29승 25패 승률 .537을 기록하고도 7위로 탈락했다.(...) 정확히는 공동 5위인데, SK, LG에 3팀 상대전적에 밀려 탈락했다. 심지어 이 때는 1, 2등의 격차가 2~7등의 격차보다 컸을 때였다!!! 그런데, 이 시즌 홈경기 전적이 1위 동부(18승 9패)보다 좋은 19승 8패였다. 즉, 홈 승률 전체 1위를 기록하고도 플레이오프에 못 간 유일한 사례다! 다행히도 2008-09 시즌에는 8위 정도에 처져 있었다가 5라운드 이후의 상승세로 똑같은 승률을 기록하고 이어 상대전적으로 6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6강에서 KCC와 5차전까지 가는 끝에 2승 3패로 탈락했다.
- 불명예 기록을 하나 더 말하자면, 2017-18 시즌까지 KBL에서 챔피언결정전 진출 경험이 없는 유일한 팀이었다. 또한 정규리그 1위를 해본 적이 없는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KBL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이 없는 구단이 인천 전자랜드 외에도 창원 LG, 부산 kt까지 해서 2개 더 있지만, LG는 2000-01 시즌과 2013-14 시즌, kt는 2006-07 시즌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전력이 있다.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셋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2018-19 시즌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아직 정규리그 1위는 못해본 유일한팀으로 LG는 2013-14 시즌, kt는 2010-11 시즌에 정규리그 1위를 해본 적이 있다.
- 불명예 기록을 또 하나 더 말하자면, 인천을 연고로 하는 스포츠 팀들 중에서 유일하게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었다. 야구팀인 SK 와이번스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나가서 3번 우승을 했고, 2018년에도 우승을 했다.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는 10-11, 11-12, 12-13, 16-17, 17-18, 18-19 시즌, 총 6번의 챔피언 결정전을 치뤘다. 그리고 2017-18 시즌에는 현존하는 인천 연고 남자 스포츠팀 중에 2번째로 우승에 성공한다. 심지어 K리그에서 선수 팔아 먹고 사는 축구팀인 인천 유나이티드도 2005년에 정규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치뤘다. 그나마 여자팀까지 범위를 넓혀야 유일한 챔피언 결정전 미진출팀이라는 불명예를 씻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인천 연고의 여자농구팀인 신한은행과 여자배구팀인 흥국생명은 이전 연고지에서는 우승까지 했다는 점이다. 즉 인천에 와서 챔피언 결정전을 치른 적이 없을 뿐이지, 팀 전체 역사에서는 챔피언 결정전 진출 기록이 있다. 그리고 18-19 시즌 흥국생명은 챔피언 결정전 진출과 동시에 통합 우승까지 달성했다. 여자축구팀인 현대제철은 인천 연고지 소속으로 우승을 6번이나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천 연고지팀 중에 똑같이 돈이 없고, 역사는 오히려 더 짧은 인천 유나이티드가 먼저 챔피언 결정전을 치뤄봤다는 점은 명백한 인천 전자랜드의 불명예. 그러나 2018-19 시즌 드디어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하면서 이제까지의 불명예를 훨훨 날렸다. 이로써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스포츠 팀 중에 챔피언 결정전을 못 치뤄 본 팀은 없다. 대명킬러웨일즈는 실업구단.
- 컵대회인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는 점이 체면치레를 한다. 우승을 못해서 그렇지.
- 2012-13 시즌에서 홈에서 13승 14패 5할 미만 팀이 원정 성적 단독 1위(20승 7패)를 기록한 유일무이한 팀이다. 그 덕에 최종 순위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 2014년 12월 23일 화요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홈경기에서 100-46으로 승리, 상대팀 점수보다 점수차가 더 큰 역대 최다 점수차 승리를 거두었다[30][31]
- 2014-15 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9년만에 6위 팀이 3위 팀(SK)을 누르고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32] 이전에도 6위 팀이 3위 팀을 탈락시킨 적은 몇번 있었으나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3위 팀을 탈락시킨 건 전자랜드가 역대 최초이다. 그 기세로 4강까지 올라가 2위 팀 동부와는 5차전 승부 끝에 최종전에서 4점 차로 패배하여 아깝게 탈락했다. 만약 5차전을 승리했다면 팀 역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진출이자 프로농구 사상 처음으로 6위 팀+5할 미만 승률팀이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가는 대기록을 쓸 뻔했다!
9.2. 신인 드래프트 잔혹사
뭔가 이상하게 신인 지명에도 운이 없어서, 드래프트 때마다 좋은 선수가 나오면 '''4'''번픽을, 흉작일때는 '''1'''번픽을 뽑는 걸로도 유명하다.
김승현이 나온 2001년 드래프트에서 4순위가 걸려 이현준 지명[33] , 전자랜드의 고질병인 빅맨 문제를 해결해 줄 하승진, 김민수, 윤호영이 나온 2008년 드래프트에서 4순위가 걸려 정영삼과 롤이 겹치는 강병현 지명[34] . 그리고 이는 역대급 풍년이라 일컬어지는 2011년 드래프트에서도 여지없이 증명되었다.(...)[35][36]
2006년 1순위로 전정규를 뽑았지만 별 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신인상을 이현민에게 넘겨줬다.
2009년은 역대급 망드래프트로 손 꼽히는 해였는데 1순위(...)로 박성진을 뽑고 구단 첫 신인상을 받았지만 현재는 그냥 예전만도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3년 드래프트에서는 '''8번픽'''(...)을 뽑음으로서 개그랜드로서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물론 이전 시즌 순위가 3위였기에 정상적인 결과였지만. 동일한 1.5% 확률을 할당받은 삼성이 4번픽을 뽑아서 박재현이란 대어를 데리고 간 것과 대조된다. 2013-14 시즌에는 문태종의 이적과 구단 매각설 등이 겹치며 암울한 성적이 예상되는데, 하필이면 2014년 드래프트부터 3~10위에 동일한 12.5%의 로터리픽이 할당되는 것으로 규정이 변경되었다(...)[37] 이쯤 되면 하늘이 버린 구단이다. 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그럼에도 똑같은 확률을 받았으니 이번엔 안 버린 것일 수도.....
2014년 드래프트에서는 3번픽을 뽑았다. 1, 2위팀을 제외한 8개팀이 모두 동일한 확률로 진행되는 행사이기에 혹시 8번을 뽑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나름 선방한 줄 알았는데..... 그러나 하필 이승현, 김준일 2파전이라고 불린 드래프트에서 3순위가 걸린다.[38]
2015년 드래프트에서는 2번픽을 뽑아 당해 드래프트 최대어 문성곤에 버금간다는 한희원을 뽑았다! 그런데 하필 요번 드래프트가 역대급 망픽으로 손꼽히는 지라.... 흉1풍4는 그대로 간다. 심지어 그마저도 박찬희와 트레이드했지만 한희원이 KGC-kt에서의 성장이 워낙 느려서 오히려 신의 한 수로 평가받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드래프트 전에 '대어가 없다' 소리가 나오면 최고의 픽순위, BIG2라고 하면 3순위, BIG3라고 하면 4순위가 얻어 걸리는 셈이다. 절묘하게 거트라인에 걸리지만 겉으로 보기엔 픽순위 자체는 좋으니 신인픽 징크스가 없는 팀처럼 보이는 착시가 일어나기도...
그러나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 등 소위 BIG3가 나오는 2016년 드래프트에서 마침내 '''3번픽'''을 뽑아 그간의 드래프트 잔혹사를 극복하고 '''강상재'''를 지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게다가 이종현, 최준용은 잘하기는 한데 부상으로 인해 골골대는 반면 강상재는 꾸준히 제 몫을 해주고 있다.
2017년 역대급 흉작인 외국인 드래프트에서는 2픽(삼성이 1픽이지만 2명 모두 재계약으로 인해 사실상 1픽),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6번픽을 뽑았다. 2번 모두 1.5% 확률을 가진 삼성보다 후순위가 나왔다. 반면에 kt는 외국인 드래프트는 6(LG는 8픽)픽이 나왔으나 신인 드래프트에서 1,2픽을 모두 먹으면서 드디어 잔혹사를 끊었다. (2픽은 LG가 나왔다.)
대어가 적어 드래프트 뎁스가 낮은 2018년 드래프트에서는 직전 시즌 6위로 시즌을 마쳤지만[39] 드래프트에서 6순위에 그치고 만다. 그나마 확률이 더 높은 7위 삼성보다 상위픽이 걸렸고 3순위 안에 지명될 줄 알았던 전현우를 지명했다는 점이 위안이다.[40]
10. 관련 틀
[1] 국문 엠블럼.
[image] [2] 독립법인으로 출범[3] 전자랜드가 20-21시즌을 끝으로 팀 운영 포기를 선언했다.[4] 1997년 원년 시즌 홈구장으로 썼던 인천도원체육관의 환경이 심각하게 열악했고 마침 바로 옆 부천시에 새로운 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9년간 부천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썼다. 전자랜드가 인천으로 복귀한 후에는 신세계 쿨캣 여자농구단이 광주광역시에서 부천시로 연고지를 옮겨와서 현재까지 WKBL 경기가 열리고 있다. 한편 옛 홈구장인 부천실내체육관과 현재 홈구장인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모두 인천과 부천의 경계지점에 있어서 두 지역 팬들의 상호 접근이 쉽다.[5]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내[6] 숙소를 2018-19 시즌부터 폐지하면서 클럽하우스를 홈구장 내에 마련했다.[7] SK그룹은 이미 SK 나이츠 농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다.[8] '''현역 KBL 장내 아나운서 중 최장수 아나운서다.''' 프로 원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 장내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체육관 마이크를 쥐고 있다. 특히 전자랜드와의 인연은 매우 깊은데 신세기 빅스 시절부터 장내 아나운서로 활약하면서 20년 정도 한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팀의 감독이자 1967년생 동갑내기로 알려진 유도훈 감독과는 술친구라고 한다. 본업은 연기자로 대표 배역은 야인시대의 황병관 역.[9] 전자랜드를 10년 이상 맡은 감독이다. 이는 현대모비스를 15년 맡고 있는 유재학에 이어 장기 집권 2위이다.[10] 코로나 19로 인한 리그 조기 종료[11] 다른 종목에도 이런 팀이 있었다. 똑같이 인천광역시를 연고로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가 그 예. KBL 초기의 나골코도 비슷한 예로 볼 수 있겠지만 이 쪽은 연고지가 광주-군산-여수-부산으로 여러 번 옮겨다닌 사례다.[12] 원주 DB의 팀 명칭이 많이 바뀌었는데 나래-삼보-TG-TG삼보-동부-DB로 총 6번 바뀌었다. 다만 모기업의 변경으로 팀명이 바뀐 전자랜드와는 달리 모기업의 이름이 자주 바뀌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부산 kt 또한 나산-골드뱅크-코리아텐더-ktf-kt 모기업이 3번 바뀌었다. 전자랜드는 대우-신세기- SK-전자랜드 4번 바뀌었는데 2021년 5월을 끝으로 농구단 운영을 접기로 함에 따라 주인이 생기면 가장 많은 모기업이 5번째로 변경되는 유일한 구단이 된다.[13] 2014-15 시즌에도 정규리그 3위 SK를 3승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올라갔지만 정규리그 2위 동부에 2승 3패로 막혀 챔프전 진출이 좌절되었다.[14] 공교롭게 그 팀들 다 현대모비스(2007년 kt 3승 4패 2014년 LG 2승 4패 2019년 전자랜드 1승 4패)를 넘지 못한 채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15] 똑같이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못한 팀들인 부산 kt 소닉붐과 창원 LG 세이커스는 각각 2009-2010시즌과 2013-2014시즌에 정규리그 우승을 한 적이 있다.[16] 즉 상위권이면 올라가고 바닥권이면 내려가는 팀의 흐름을 볼 수 있다.[17] 그래도 연장 2번에, 마지막 5차전은 무려 2차연장까지 가는 항구더비로 이미지가 상쇄되었다.[18] 이 때 구단은 우승의 맛을 알게 해주기 위해, 우승하면 리그 통합우승 수준의 우승기념 모자, 티셔츠 등등 많은 준비를 했으나 결국 준우승.[19] 이 때부터 개그랜드 발언이 많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현재는 전랜까면 사살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20] 리바운드한 볼에는 선수 본인이 사인을 해서 다른 볼과 교체한 후 하프타임에 증정[21] 참고로 정예인 양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출신이다. 전자랜드의 홈구장인 삼산월드체육관 또한 인천 부평구 소재.[22] 신세기 빅스 시절 모기업이었던 신세기통신이 SK그룹에 인수되었기 때문이다.[23] 실제로 김유정 양은 FC 서울의 팬이기도 하며 도전 골든벨 해성여고 편에서 아디의 팬이라고 인증하기도 했다.[24] 그 와중에 전 구단 상대 승리로 자존심을 챙겼다. 꼴찌 팀이 전 구단 상대 승리한 사례는 00-01 모비스, 04-05 전자랜드, 16-17 KCC가 전부이다.[25] 원정 성적이 막장이었다. 02-03 SK 나이츠, 12-13 KCC는 물론, 17-18시즌 kt와 05-06시즌 전자랜드마저 깨지 못한 3승 24패.(...) 참고로 05-06시즌에는 홈과 원정에서 똑같이 4승 23패를 거뒀다.[26] 기존 기록은 3점으로 총 3번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이나 전자랜드가 상대를 3점으로 막았다.[27] 이 경기는 KCC가 전자랜드를 상대로 1쿼터 3:23으로 시작했고, 끝내 30점차로 KCC가 대패했다.[28] 상대전적으로는 KT&G에 4승 2패로 앞섰다.[29] 최희암 감독 시절에는 06~07 9위-07~08 7위-08~09 6위를 기록. 이때는 2006-07 시즌을 제외하면 5할을 모두 넘겼지만, 상대전적 때문에 2007-08 시즌은 탈락, 2008-09 시즌은 6강이었다. 전자랜드에서의 통산승률은 딱 5할. 사실 2006-07 시즌도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수 있었다. 6위 KT&G와 단 2경기 차이였기 때문. 심지어 상위권 팀에 2위 LG(2승), 5위 삼성(2승) 제외 최소한 반타작 이상을 기록했지만 꼴찌 KCC와 8위 동부에 합계 3승 9패로 탈탈 털리는 바람에... 시즌 종료 후 지점장에서 현재는 사장으로 영전.[30] 종전 기록은 2013년 10월 15일 모비스가 KCC를 상대로 낸 43점으로 당시 결과는 101-58이었다.[31] [image]
이 경기 종료 직전 스코어 자막과 상대팀 이상민 감독의 나라 잃은 표정이 합쳐진 애처로운 짤이 한동안 유명했다. 구글에서 '이상민 극한직업'(...)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짤에 붙는 드립으로는 "하아... 조작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XX놈들아"(...).[32] 이전까지 가장 최근 기록은 2005-06 시즌 대구 오리온스로 3위 원주 동부를 2승 1패로 잡아내고 4강에 올라갔다.[33] 그리고 이현준은 루키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KCC로 트레이드되었다.[34] 다만 결과적으로 강병현이 시즌 중반에 팀과 마찰을 겪고 있던 KCC의 서장훈과 트레이드되면서 빅맨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고 바닥을 기던 팀이 플옵에 가고 이듬해에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는 등 짧은 부흥기를 맞는다. 사실 서장훈이 노장이라 몇 년 못 써서 그렇지 당시 그의 실력이면 하승진은 몰라도 김민수나 윤호영이 비빌 데가 못 된다.[35] 1~3픽이 오세근, 김선형, 최진수, 그리고 전자랜드는 4픽이 걸리며 함준후를 뽑았다. 오세근은 MVP급 활약을 뿜어내고 있고 김선형은 SK 나이츠를 이끌다시피 하고 있으며 최진수와 오리온스도 살아나고 있는데 함준후는(...)[36] 그래도 2016년 함준후를 서울 SK에 있던 이대헌과 트레이드하며 젊은 빅맨 수혈에 성공하긴 했다.[37] 그전 시즌 몇몇 구단들이 대학 최대어 김종규를 잡기 위해 고의로 패배하여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회피하면서 논란이 생겼기 때문.[38] 그래도 높이도 있고 기동력에 수비적극성도 꽤 좋은 정효근은 현재 전자랜드에서 없으면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39] 안양 KGC인삼공사와 공동 5위지만 상대전적에서 밀렸다.[40] 이로써 전자랜드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번 연속 1라운드 지명 선수를 고려대 출신을 뽑았다. 강상재, 김낙현, 전현우
[image] [2] 독립법인으로 출범[3] 전자랜드가 20-21시즌을 끝으로 팀 운영 포기를 선언했다.[4] 1997년 원년 시즌 홈구장으로 썼던 인천도원체육관의 환경이 심각하게 열악했고 마침 바로 옆 부천시에 새로운 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9년간 부천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썼다. 전자랜드가 인천으로 복귀한 후에는 신세계 쿨캣 여자농구단이 광주광역시에서 부천시로 연고지를 옮겨와서 현재까지 WKBL 경기가 열리고 있다. 한편 옛 홈구장인 부천실내체육관과 현재 홈구장인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모두 인천과 부천의 경계지점에 있어서 두 지역 팬들의 상호 접근이 쉽다.[5]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내[6] 숙소를 2018-19 시즌부터 폐지하면서 클럽하우스를 홈구장 내에 마련했다.[7] SK그룹은 이미 SK 나이츠 농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다.[8] '''현역 KBL 장내 아나운서 중 최장수 아나운서다.''' 프로 원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 장내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체육관 마이크를 쥐고 있다. 특히 전자랜드와의 인연은 매우 깊은데 신세기 빅스 시절부터 장내 아나운서로 활약하면서 20년 정도 한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팀의 감독이자 1967년생 동갑내기로 알려진 유도훈 감독과는 술친구라고 한다. 본업은 연기자로 대표 배역은 야인시대의 황병관 역.[9] 전자랜드를 10년 이상 맡은 감독이다. 이는 현대모비스를 15년 맡고 있는 유재학에 이어 장기 집권 2위이다.[10] 코로나 19로 인한 리그 조기 종료[11] 다른 종목에도 이런 팀이 있었다. 똑같이 인천광역시를 연고로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가 그 예. KBL 초기의 나골코도 비슷한 예로 볼 수 있겠지만 이 쪽은 연고지가 광주-군산-여수-부산으로 여러 번 옮겨다닌 사례다.[12] 원주 DB의 팀 명칭이 많이 바뀌었는데 나래-삼보-TG-TG삼보-동부-DB로 총 6번 바뀌었다. 다만 모기업의 변경으로 팀명이 바뀐 전자랜드와는 달리 모기업의 이름이 자주 바뀌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부산 kt 또한 나산-골드뱅크-코리아텐더-ktf-kt 모기업이 3번 바뀌었다. 전자랜드는 대우-신세기- SK-전자랜드 4번 바뀌었는데 2021년 5월을 끝으로 농구단 운영을 접기로 함에 따라 주인이 생기면 가장 많은 모기업이 5번째로 변경되는 유일한 구단이 된다.[13] 2014-15 시즌에도 정규리그 3위 SK를 3승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올라갔지만 정규리그 2위 동부에 2승 3패로 막혀 챔프전 진출이 좌절되었다.[14] 공교롭게 그 팀들 다 현대모비스(2007년 kt 3승 4패 2014년 LG 2승 4패 2019년 전자랜드 1승 4패)를 넘지 못한 채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15] 똑같이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못한 팀들인 부산 kt 소닉붐과 창원 LG 세이커스는 각각 2009-2010시즌과 2013-2014시즌에 정규리그 우승을 한 적이 있다.[16] 즉 상위권이면 올라가고 바닥권이면 내려가는 팀의 흐름을 볼 수 있다.[17] 그래도 연장 2번에, 마지막 5차전은 무려 2차연장까지 가는 항구더비로 이미지가 상쇄되었다.[18] 이 때 구단은 우승의 맛을 알게 해주기 위해, 우승하면 리그 통합우승 수준의 우승기념 모자, 티셔츠 등등 많은 준비를 했으나 결국 준우승.[19] 이 때부터 개그랜드 발언이 많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현재는 전랜까면 사살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20] 리바운드한 볼에는 선수 본인이 사인을 해서 다른 볼과 교체한 후 하프타임에 증정[21] 참고로 정예인 양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출신이다. 전자랜드의 홈구장인 삼산월드체육관 또한 인천 부평구 소재.[22] 신세기 빅스 시절 모기업이었던 신세기통신이 SK그룹에 인수되었기 때문이다.[23] 실제로 김유정 양은 FC 서울의 팬이기도 하며 도전 골든벨 해성여고 편에서 아디의 팬이라고 인증하기도 했다.[24] 그 와중에 전 구단 상대 승리로 자존심을 챙겼다. 꼴찌 팀이 전 구단 상대 승리한 사례는 00-01 모비스, 04-05 전자랜드, 16-17 KCC가 전부이다.[25] 원정 성적이 막장이었다. 02-03 SK 나이츠, 12-13 KCC는 물론, 17-18시즌 kt와 05-06시즌 전자랜드마저 깨지 못한 3승 24패.(...) 참고로 05-06시즌에는 홈과 원정에서 똑같이 4승 23패를 거뒀다.[26] 기존 기록은 3점으로 총 3번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이나 전자랜드가 상대를 3점으로 막았다.[27] 이 경기는 KCC가 전자랜드를 상대로 1쿼터 3:23으로 시작했고, 끝내 30점차로 KCC가 대패했다.[28] 상대전적으로는 KT&G에 4승 2패로 앞섰다.[29] 최희암 감독 시절에는 06~07 9위-07~08 7위-08~09 6위를 기록. 이때는 2006-07 시즌을 제외하면 5할을 모두 넘겼지만, 상대전적 때문에 2007-08 시즌은 탈락, 2008-09 시즌은 6강이었다. 전자랜드에서의 통산승률은 딱 5할. 사실 2006-07 시즌도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수 있었다. 6위 KT&G와 단 2경기 차이였기 때문. 심지어 상위권 팀에 2위 LG(2승), 5위 삼성(2승) 제외 최소한 반타작 이상을 기록했지만 꼴찌 KCC와 8위 동부에 합계 3승 9패로 탈탈 털리는 바람에... 시즌 종료 후 지점장에서 현재는 사장으로 영전.[30] 종전 기록은 2013년 10월 15일 모비스가 KCC를 상대로 낸 43점으로 당시 결과는 101-58이었다.[31] [image]
이 경기 종료 직전 스코어 자막과 상대팀 이상민 감독의 나라 잃은 표정이 합쳐진 애처로운 짤이 한동안 유명했다. 구글에서 '이상민 극한직업'(...)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짤에 붙는 드립으로는 "하아... 조작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XX놈들아"(...).[32] 이전까지 가장 최근 기록은 2005-06 시즌 대구 오리온스로 3위 원주 동부를 2승 1패로 잡아내고 4강에 올라갔다.[33] 그리고 이현준은 루키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KCC로 트레이드되었다.[34] 다만 결과적으로 강병현이 시즌 중반에 팀과 마찰을 겪고 있던 KCC의 서장훈과 트레이드되면서 빅맨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고 바닥을 기던 팀이 플옵에 가고 이듬해에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는 등 짧은 부흥기를 맞는다. 사실 서장훈이 노장이라 몇 년 못 써서 그렇지 당시 그의 실력이면 하승진은 몰라도 김민수나 윤호영이 비빌 데가 못 된다.[35] 1~3픽이 오세근, 김선형, 최진수, 그리고 전자랜드는 4픽이 걸리며 함준후를 뽑았다. 오세근은 MVP급 활약을 뿜어내고 있고 김선형은 SK 나이츠를 이끌다시피 하고 있으며 최진수와 오리온스도 살아나고 있는데 함준후는(...)[36] 그래도 2016년 함준후를 서울 SK에 있던 이대헌과 트레이드하며 젊은 빅맨 수혈에 성공하긴 했다.[37] 그전 시즌 몇몇 구단들이 대학 최대어 김종규를 잡기 위해 고의로 패배하여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회피하면서 논란이 생겼기 때문.[38] 그래도 높이도 있고 기동력에 수비적극성도 꽤 좋은 정효근은 현재 전자랜드에서 없으면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39] 안양 KGC인삼공사와 공동 5위지만 상대전적에서 밀렸다.[40] 이로써 전자랜드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번 연속 1라운드 지명 선수를 고려대 출신을 뽑았다. 강상재, 김낙현, 전현우